꿈의 알프스. TMB 그 길위에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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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므고개를 넘어 다시 프랑스 땅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트리앙을 떠나자 마자 바로 나타나는 가파른 산을 넘어야하고 그 정상은 몽블랑 트레킹 종주중 마지막 고개입니다. 여전히 잔설이 허허로운 정상부분은 우리들의 발길을 붙잡지만 더욱 눈높이로 다가온 몽블랑의 응원으로 즐거이 고개를 넘습니다. 평탄한 지역의 야생화 군락은 때로는 메밀꽃밭처럼 때로는 유채꽃밭처럼 펼쳐집니다. 봉평에 와있는 듯 올레길을 걷는 듯 잠시 착각하며 고향길 위에 있어 더욱 가벼워진 걸음입니다. 상상 이상으로 가슴을 뛰게했던 하얀 만년설과 웅장한 빙하. 순수로 빛나는 첨봉들과 대자연의 경이를 느끼게 했던 능선길. 알프스의 모든 풍경을 담아내던 쪽빛 호수와 알프스의 산촌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미소. 억겁 세월이 빚어낸 경이로운 자연을 만끽하는 산길들이 벌써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해뜨면 걷고 해지면 잠자고 무념으로 이어가는 종주길. 날씨도 수시로 바뀌며 걸음을 방해하고 힘든 날에는 노을이 질 무렵에야 파김치가 되어서야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머리는 더욱 맑아집니다. 허전함과 쓸쓸함도 존재하지만 뿌듯한 성취감과 행복함이 함께 교차되는 이 순간들을 고이 모아 내 삶의 이정으로 삼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내리막을 내려 알프스 설산을 오르내리는 곤돌라를 보며 걷는 구간으로 들어서고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두 개의 호수가 나란히 놓여있는 락블랑 산장에 이르고 고귀한 또 하루를 내려놓습니다. 산장은 샤모니와 몽블랑 산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로 오른쪽에 보숑빙하와 몽블랑 정상부가 정면으로 보입니다. 호수에 비치는 몽블랑의 자태로 알프스를 대변하는 대표적 풍경인데 오늘은 바람에 흔들리며 화면이 깨어져버립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대신 송곳처럼 날카롭게 치솟아 있는 알프스 명봉 드류와 그랑드조라스. 당뒤제앙. 몽블랑등 웅장하게 뻗은 만년설산들의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 어두워질 때까지 바라다봅니다. 알프스의 자연은 웅대하고 아름다웠으며 장엄하기까지 하며 억겁의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결과물이기에 더욱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해발 2,352m에 누운 아름다운 산정 호수 락블랑(Lac Blanc)에서 알프스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조용하게 저물어갑니다.  아침 햇살로 씻은 듯 맑은 하늘. 산은 정결한 산소를 뿜어내고 산장의 부지런한 아침이 열립니다. 인생도 목표가 있어야 모든 것을 불태우듯 오늘 또 우리에게 주어진 미지의 길을 마저걸어 TMB를 완주하는 계획이 있어 하루를 불사를 전의를 다집니다. 오늘의 목적지 브레방을 향해 위대한 인류의 흔적인 에귀뒤미디 전망대를 등에 지고 비탈길 그침없이 오르면 물에 젖은 스폰지처럼 묵직해진 몸으로 정상에 이릅니다. 오르는 내내 왼쪽에는 거대한 메르데 빙하가 시야를 채우고 그 주변으로 날카롭게 솟아오른 설봉들이 청자색 하늘을 품고 펼쳐집니다. 빙하는 불과 백년전만 해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거의 다 녹아버려 그저 초라하고 황량하게 변했는데 지구촌의 기후 위기가 뼈때리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귀신이 사는 악마의 산이라 여긴 몽블랑을 확인하러 샤모니의 3대 전망대 중 하나인 브레방으로 가는 길. 샤모니 계곡에서 간단없이 피어오르는 구름 안개는 브래방 산마루를 넘지 못하고 머무니 햇빛마저 쏘아주는 반대편 산군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산아래 예쁜 동리 샤모니가 푸른 숲에 누워있는 풍경. 걸음마다 산소가 폐부로 뭉치로 흡입되는 느낌이 들게하는 그런 힐링의 길입니다. 햇살은 축복처럼 은총처럼 인자하게 내리고 한번씩 불어주는 고마운 바람. 저만치 몽블랑의 정상부분이 앞산 산허리에 걸려있습니다. 때론 너덜지대를 때론 시냇물을 건너기도 때론 이제야 만개하는 알프스의 야생화를 감상하며 걷는 길. 산꽃이 들꽃이 풍겨내는 향취에 취해 걸으니 은근히 지속되는 오르막길에서도 저절로 콧노래가 나옵니다. 비록 2천 고도를 넘긴 길이지만 그늘 없이 지속되니 땀으로 흥근해 지면서 그 동안 내 안에 쌓인 영과 육의 찌꺼기들이 모두 배출되는 듯하여 상쾌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마침내 브레방 전망대(2,526m)에 당도했습니다. 원래의 TMB 코스는 이 브레방 전망대에서 벨라샤 산장과 메를레 주차장을 지나 출발했던 레 우슈로 내려가면 완성됩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기로 하고 대신 브레방 호수를 갔다오면서 몽블랑을 눈높이에서 마주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더 갖기로 했습니다. 뱀처럼 휘어져도 여전히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 가는데 세상 온갖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져 알프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하이디 소녀가 즐거운 걸음으로 뛰어 나올것 같고 목동들의 요들송 합창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옵니다. 알프스 같은 유럽의 고산지대에서 볼수 있는 야생 산양인 사무아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으니 평화로운 느낌의 한폭 풍경화가 되어버립니다. 초반 메르데 빙하가 더욱 가까이에서 가득 눈에 잡히고 이제는 몽블랑이 기꺼운 인사를 하며 영접합니다. 이 길이 몽블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 뒤로 버틴 몽블랑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가장 훌륭한 트레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명당인 세상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서 점심을 즐기고 산마루를 따라 흘러가는데 거대한 설산들이 우리 주변을 포진하여 멋진 풍광을 선사합니다. 너무도 가깝고 장대하여 가슴을 쓸어 내리는데 그것은 바로 운무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몽블랑 정상부가 날이 개자 그 웅대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차오르는 몽블랑의 기세. 참으로 명산입니다. 저 산을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 여정을 해왔던가. 성공을 위해 달려온 우리의 인생. 자신의 삶의 이정표를 마련하고 달려 왔듯이 정상을 향해 묵묵히 방향을 정하고 계획하며 오르는 것이 마치 삶의 향방을 잡고 설계하며 살아가는 인생과 흡사하다 하겠습니다. 인생의 등반 루트가 꼭 산의 루트와 같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도 아름답고 산정을 향한 힘든 사연이 많은 길도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계곡을 수놓은 페러 글라이딩의 힘찬 비상이 종주를 끝낸 우리에게 선사하는 축하의 공연인듯. 개선장군이 되어 당당하게 샤모니로 입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