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종주 2.

영문 이니셜 W자 형태로 생겼다고 붙여진 W 트랙. 이 트레일을 걷기 위해 수많은 세계 트레커들이 로망으로 여기며 찾아들고 있습니다. 파이네는 천이백만 년 전 융기한 바위산으로 화강암을 덮고 있던 퇴적암이 빙하에 의해 침식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토레스는 탑이라는 뜻이며 파이네는 푸르다는 의미. 그래서 우리는 푸른 거탑 이라고 나름대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고요한 천국 같은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신이 내린 마지막 선물이라는 이곳. 그러나 이곳도 지금에서야 미지의 세계를 갈망하고 원시 자연을 동경하는 열정으로 모험가들의 가장 사랑받는 방문지가 되었지만 19세기 까지만 해도 불모의 땅으로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버림받은 지대였습니다. 진화론의 거두, 찰스 다윈마저도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땅으로 규정 지워버린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파타고니의 새로운 아침은 열리고 노르덴스크홀드 호수와 함께 걷는 넉넉한 길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W트레킹 내내 곁을 따라 오면서 이런저런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노르덴스크홀드 호수를 왼편에 어깨동무처럼 두고서 말입니다. 파타고니아의 자연은 체념하고 별반 항거없이 순응하는 우리가 기특했는지 이내 화사한 초가을 날씨를 주십니다. 정갈한 풍경. 푸르디 푸른 하늘엔 너무 공허로울까봐 흰구름 몇점씩 띄워놓았고 또렷한 산세는 그 푸른하늘을 지고 있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합니다. 어제 힘들게 올라가서 마침내 해후한 파이네 삼봉은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청자빛 하늘을 뒤로 두고 화려하게 변신한 채 길 떠나는 우리에게 미소지어 보입니다. 다함께 단체 사진을 기념으로 남기고 마음도 가벼워진 우리는 우측으로 펼쳐진 만년설봉의 산군과  노르덴스크홀드 호수가 함께 펼쳐내는 산수화를 마음껏 감상하며 노래도 불러가며 흥겹게 W자를 그리고 갑니다. 바람 햇살 꽃 향기. 심지어 땀내 베인 사람의 내음 까지도 포함해서 스치는 모든 것들이 풍기는 향기에 취하고 돌아가는 어귀마다 펼쳐보이는 새로운 풍경에도 취한 채 걷고 또 걷습니다.    바람의 나라. 폭풍의 대지. 마젤란 해협을 따라 불어오는 태평양과 대서양의 바람 때문에  파타고니아의 일기는 참으로 변화가 극심합니다. 해양성 기후에다  눈과 비가 섞인 바람은 몸을 날려버릴듯이 불어 닥칩니다. 결국은 아담한 몸매를 지닌 강총무가 그 광폭한 바람에 그냥 내동댕이 쳐버려 비탈길로 떨어질뻔하다 지나치는 외국인이 붙잡아 주어 큰사고는 면했습니다. 다행히 숲덤불에 넘어지며 자켓이 찢어지고 얼굴에 작은 상처를 남기는 정도로 화를 면했습니다. 주체할수 없이 몰아치는 일진광풍에 거구들도 속수무책으로 발이 묶여버리는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입니다. 이 거칠고 황량한 바람의 대지에서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살아 남을 것이 있을까 의문스러워 집니다. 파타고니아의 기후는 고지대와 저지대마다 달라 바람도 다르다 합니다. 이토록 변화 무쌍한 자연과 풍경을 본 사람들은 파타고니아를 보지 않고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나 봅니다. 길 들여지지 않은 광폭한 바람마저도 아름다운 파타고니아. 그 풍경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갑니다. 바람이 어느 정도 잠들고 암반위로 정갈한 시내가 흐르는 개울옆에서 자리잡고 점심을 준비합니다. 한국에서 요즘 부쩍 늘어난 백팩킹과 캠핑족들 덕분에 많은 건조 식품들이 속속 개발되어나와 물만 끓여부으면 밥이 되고 국과 찌개가 되고합니다. 전투식량이라 이름붙여진 건조밥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준비해간 짜장을 볶아내고 김치를 곁들여 내니 이국 땅 먼 하늘아래서 이런 입의 호사가 어디있냐며 감탄을 합니다. 게다가 아무리 짊어지는 무게가 부담스런 종주길이라도 빼놓고 올수 없는 소주 한잔이랑 함께 즐기는 이 오찬.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이자 이 세상 가장 훌륭한 가든식당에서 한끼 식사를 즐기는 우리는 분명 신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식곤증에 배꼬대를 잠시하다가 다시 길을 나섭니다. 잰걸음으로 반은 달리다시피 하였더니 우린 5시간 시간만에 로스 쿠에르노스 산장에 도달해 여장을 풀수 있었습니다.    지친 산행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한잔. 김선홍님이 쏜 맥주를 두당 각 일병해서 17병 대자로 시키니 바텐더가 잘 못알아듣고 자기 동료에게 다시 확인해보기 까지 합니다. 한병씩 들고 영원한 청춘을 위하여! 건배사를 안주삼아 기분좋게 들이킵니다. 하루의 밀린 숙제를 마감한 뒤의 후련함 처럼 세상 더이상 이리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과제물이 날라왔습니다. 바람에 날렸던 그 강총무가 그때 넘어지면서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빠져 달아났다는 것입니다. 다섯명의 특공대가 자발적으로참여하여 왕복 2시간의 길을 되돌아 갔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이들의 노고에 부합한 결과. 드디어 그 핸드폰을 찾아내서 가져왔습니다. 모두 환호하며 감사하다고 또 각일병씩 쏜 강총무의 포상 파타고니아 맥주 Austral.  왁자지껄한 저녁 식사가 무용담으로 이어집니다.어느새 파타고니아의 바람이 그 어둠을 몰고왔는지 짙어진 하늘에 별들이 가득 반짝입니다. 깊어가는 파타고니아의 밤. 익어가는 주연. 가득해지는 삶의 자부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