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꽃길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 3.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

순결한 소녀같은 산 융프라우의 품에 안겨서.. 만년설산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우리들의 환상을 자극하는가.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들도 그 장대하고 고고한 산의 멋에 빠져 막연한 동경을 품습니다. 그 곳이 설봉에서 흘러내린 눈이 설계를 만들고 그 아래 초원에는 색색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알프스 산군이라면 아마 모두 그 산에 대한 실재감은 상실한 채 화려한 상상으로 가득한 낭만적인 대상으로 여길 것입니다. 유럽의 지붕으로 홍보되어온 스위스의 융프라우봉은 여성적으로 다가와 중성적인 뭰휘, 유난히 젊은 산악인들이 많이 잠든 장쾌한 남성적인 아이거 봉과 더불어 알프스 산군 중 인터라켄 지역을 장악하는데 젊은 처녀라는 뜻이랍니다. 프랑스 샤모니의 몽블랑보다 무려 650미터나 더 낮은 데도 불구하고 유럽의 지붕이라 우기는 것은 그만큼 산군의 규모나 산세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서일까 아니면 관광 주도권을 빼앗기기 싫은 스위스 측의 억지인지는 모르지만 산을 사랑하는 우리로서는 두 곳 다 그런 수사를 얻기에 충분하다 여겨집니다. 단지 정밀 산업과 관광산업이 국가 수입원인 영악한 스위스는 이런 심리를 이용해 방문자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만들고 이웃 나라들보다 두 배에 가까운 물가조차도 당연하다 여기며 쓰게 만들어 왔습니다. 세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부유하고 복지가 충만한 나라. 이방인들에게 살인적인 물가로 걷어 들여 자국민들에게 나눠주는 손해 보지 않는 장사이므로 어쩐지 입구마다 써놓은 “환영합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말이 스위스라면 여행자들의 성지로 여기며 경쟁적으로 몰려드는 한국민들을 봉으로 여기는 불쾌감으로 다가와 내내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도 알프스의 3대 미봉 중 융프라우 지역에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백년을 넘기는 역사 동안 그 험준한 산악지역을 기차를 타고 3454미터 영봉에 까지 올라 빙하를 밟을 수 있고 그 아래 뻗어나간 그린델발트, 피르스트, 아이거 글레쳐, 슈니게 플라테, 뮤렌 등지의 산악 마을들이 거미줄처럼 조성된 트레일을 즐기는 산행 연결지로서 뿐만이 아니라 관광지로서의 빼어난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톱니바퀴 이를 맞추듯 열차는 시간의 낭비 없이 연결되어 알프스를 알뜰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교통체계는 본받을 만합니다.   순결한 처녀를 만나기 위해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숙소가 있는 인터라켄을 출발  라우터브룬넨으로 열차를 타고 이동한 후 다시 연결되는 산악 궤도 열차를 타고 내려 또 다시 트램으로 맨리헨으로 이르는 긴 여정입니다. 여기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왕의 길이라 불려지는 로열 트레일을 걸어 전망대에 올라 융프라우 전체 산군을 모두 조망하고 클라이네 슈테크 까지 이어진 2시간 어치의 길을 가며 내내 전방에 펼쳐놓은 융프라우 산군과 눈맞춤하다가 아이거 트레일로 갈아타고 아이거 글레쳐 까지 올라가 마침내 빙하의 품으로 안기는 여정입니다. 트레킹 내내 3대 영봉이 시야 가득히 머무르며 함께 합니다. 탁 트인 발아래 펼쳐지는 산촌과 들꽃들의 향연을 감상하며 한없이 여유롭게 바람 따라 흐를 수 있는 길. 좌우로 번갈아가며 빙하를 가득 채운 안부가 이어지는 거대한 설인처럼 버티어선 아이거, 멘휘. 융프라우가 얼굴을 비추며 동행하는 길입니다. 칼날 능선을 따라 때로는 눈밭도 지나며 가면 묵직한 워낭을 목에 건 한가로운 알프스의 소들이 길을 열어주는 곳. 각축을 하듯 피고 지는 갖은 야생화들이 산객들을 환영하여 줍니다. 한숨 쉬어가며 산록을 보면 골마다 장쾌하게 내리는 폭포가 장관인데 모두 빙하가 녹은 물이 모인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초라해지는 이 빙하들의 부피가 현대에 들어 급속도로 감소했을 정도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고 있어 이렇게 나간다면 1세기 내에 알프스의 빙하가 사라져 인근 물 부족 현상과 생태계 교란 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재난까지도 야기할 것이라는 경고는 참으로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이 웅대한 융프라우 산군의 품에 안겨 오감을 열고 걷는 이 순간을 한껏 즐기려 합니다. 알프스만의 독특한 내음이 가득 풍겨오는 바람을 가르고 걷는 길에서 “내가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 나와 함께 땅에 묻힐” 추억을 만들어 봅니다. 아이거컬쳐로 마지막 오르는 비탈길. 비록 인공호수지만 옥색 고운 빙하호를 조성해둔 곳이 있어 물속에 벤치를 담아둬 고단한 길손들의 발을 식혀가게 해둔 작은 정성이 고맙기만 합니다. 거대하고도 말문을 일시에 제압하는 빙하군의 바로 아래 칼날 능선 위에서 더욱 왜소해지는 인간의 모습, 내 자화상을 보며 더욱 겸허롭게 살아야 함을 다시 자각하게 됩니다. 저녁 시간 브리엔츠 호수에 띄워 놓은 디너 크루즈를 타고 호반을 가를 때도 그 수면에 비치는 장대한 설산군을 보면서 한번 더 다짐해 보는 각오랍니다.    오늘은 융프라우 라운드 트레킹 중 가장 사랑을 받는 피르스트에서 시작하여 슈니게 플라테까지 이어지는 트레일을 걷기 위하여 열차를 타고 거점 그린델발트로 달려갑니다. 스위스 민요처럼 아름다운 곳. 알프스의 끝없는 도전으로 일구어진 산악마을 그린델발트. 험상궂은 알프스 산군아래 둥지를 튼 이곳은 여러 트레킹을 위해 흩어지는 갈림길인데 주변을 올려다보면 설산들이 눈에 한가득 들어옵니다. 마을길은 그대로 트레일이 되어 연결되는데 계절도 경계가 없이 이어집니다. 이 낯선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 자연을 흠뻑 흡입하리라는 기대에 마음도 설레입니다. 피르스트 절벽 트레일을 걸으며 몸도 풀고 장대하게 앞을 가린 설산군의 위용을 감상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시작하여 일반인들도 기꺼이 방문하는 한시간 거리의 바흐알프로제 호수를 지나 포울호른 고개를 넘어 산마루를 이어 걷다 정상을 밟고 돌아오는 오늘 우리의 길. 수많은 방문에 속깊은 정이 들었을까? 호수 가는 길 고개까지 산양 세마리가 우리와 동행하여 가다 서고 쉬고를 함께 합니다. 사진을 찍느라 멈춰서면 그들은 풀을 뜯고 출발하면 다시 졸졸졸 따르는 이 무리들. 신기하다고 던지는 행인들의 부러운 시선이 느껴집니다. 바흐알프로제 호수에 비친 영봉들의 풍광은 알프스를 대표하는 홍보 책자에 단골로 나오는 것으로 많은 방문객이 이어지는데 그 중에는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산행을 나선 어린 하이커들도 허다합니다. 스위스의 아이들은 그렇게 어릴 적부터 산과 자연을 접하며 인성을 키워나가며 산악인이나 가이드로의 미래를 다져갑니다. 호숫가에 가득 피어난 산꽃들이 이 여름을 불태우는데 차마 두고 가기 주저하게 하는 것은 앞에 버티어선 수백길 경사로가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잔돌이 듬성듬성 덮인 길을 따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정점을 향해 오르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산마루를 넘는 저곳에 셸터가 마련되어 쉬어가라 이르는데 수런수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다보니 언제인지 모르게 다다랐습니다. 바람도 쉬어가는데 우리라고. 버너 지펴 어묵탕 끓여내고 라면도 끓여서 도시락밥 살뜰하게 먹어치웁니다. 지나치는 길손들의 시장기를 자극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따라 매년 치뤄지는 아이거 트레일 러너 대회 때문에 산길에는 원색으로 무장한 산악 마라톤 선수들과 진행요원 그리고 응원하는 가족 친지들로 인간띠를 이었습니다.    한 고개 넘어가면 릿지길이 무던히도 길게 이어집니다. 그 길은 천상의 길이며 초록물이 들어 마냥 싱그러운 꽃길입니다. 좌우로 가득 채워진 융푸라우 산군의 장쾌함을 따라 우리들의 발길도 신이 나는 길입니다. 하늘대는 야생화들이 오늘따라 더욱 귀엽기만 하고 흘러가는 바람도 신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망루처럼 봉긋 솟아오른 포울호른에 오르니 일망무제 탁 트인 시야에는 웅장한 알프스 산군이 거대하게 펼쳐집니다. 마냥 그 품에 안겨 있고 싶었으나 구름이 두터워지더니 한방울 두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이 천하제일경을 마주하고 어이 허망하게 정상을 떠날수 있을까! 맥주 한조끼 커피 한종지 모두 취향대로 한잔씩 마시며 구름 장막이 열었다 닫았다를 연신 반복하며 펼쳐놓는 융프라우 산 군에 빨려 들어갑니다. 우리의 지나온 길이 길게 이어져 보입니다. 초보자에게는 너무도 힘들었을 고난의 길. 그래도 그 길고도 치열한 길을 함께 완주 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챙겨가며 정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동행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이 3대 미봉 트레킹을 마감하며 수채화처럼 희미한 추억들을 오래토록 간직하라는 알프스의 배려가 아닌가 여겨지는 마지막 길. 일상으로 돌아가 또 정신없이 살다가 잠시 손을 놓고 떠올리는 추억 하나. 그 고난스러웠지만 아름답고 행복했던 길 위에서 나눈 땀과 우정과 사랑이 마냥 그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