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변방 에크랑 국립공원. 그 길 위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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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 인간의 존재와 능력이 얼마나보잘것 없는 것인지 실감한 지난 일년반 동안의 시간.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에 대해 별 저항없이 백기를 들었고 무기력하게 살아왔던 오랜 창살없는 영어의 세월. 먼훗날 이 시대를 되돌아보며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서술할 것이며 우리는 또 어떻게 살았노라 설명할 것인가? 추억은 바람의 속도로 지나간다지만 삶에 있어서 긴 공백이 생겨버려 뻥 뚫린 기억의 부재. 이 아니 슬프디 슬픈 아픔이었던가! 그래도 우리는 용기를 내야만 했습니다. 길을 나서는데는. 비록 백신이 개발되고 어찌어찌 2차 접종까지 마쳤으나 제한 사항이 각국마다 다르니 두달간 5개국을 돌아다닌다는 것이 여간 불안하지않으며 마치 난생처음 코스 개발을 위해 미답의 지역으로 떠났던 그때처럼 설레임과 불안함이 병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동행들과 스위스와 프랜치 알프스를 걷고 지중해 섬들과 연안 나라들을 섭렵하기 위하여 장기간용 배낭을 꾸렸습니다. 그래야 단기간용과 별반 차이도 없으니 길 떠나는자 짐이 많으면 그만큼 수심도 깊어지는 법. 버리고 줄여서 단출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황당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하고 별의별 우여곡절을 겪은 후 마침내 스위스 제네바에 내려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을 모두 마치고 프랑스 에크랑 국립공원내 GR54, 즉 Tour de l'Oisans을 걷기 위해 거점 마을 Bourg d' Oisans으로 달려가다가 프랑스의 산악마을 안시(Annesy)를 방문하였습니다. 제네바에서 35km 정도 남하하다가 만나는 안시는 어린 왕자의 저자 생떽쥐페리가 공군조종사였던 시절 이 안시의 절경에 정신줄을 놓고 회항하여 다시 둘러보았다는 곳입니다. 우리와 연관이 있다면 평창과 함께 동계올림픽 최종 후보지였지만 고배를 마신 아름다운 호반도시로 죽기 전 꼭 가봐야할 세계 10대 도시중의 하나로 인구에 회자되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를 품고있는 안시는 프랑스인들이 은퇴 후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는 곳 중 첫번째로 손꼽히는 매우 수려한 동화마을입니다. 빙하가 녹아 호수를 채우고 호수를 넘친 에메랄드색  호수물이 마을을 적시며 흐르는 수로 양안으로 온갖 꽃들로 장식된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어 나그네의 감성을 자극하고 한잔 와인이라도 기울이게 합니다. 구 시가지로 들어서면 아직 그대로 현존하는 중세의 모습과 육중한 돌로 지은 건물들이 그 오랜 역사의 향기를 뿜어내는데 자칫 이탈리아의 수상도시 베니스에 온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습니다.    찬연한 서남 알프스의 아침이 열리고 Bourg d' Oisans의 수퍼마켓에서 필요한 식자재를 구입하고 바로 베쓰(Besse)로 이동하여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오래된 산악마을 베쓰 마을을 관통하는데 지어진 연대를 도저히 가늠해 알수없는 정말 오래된 돌집들로 마을을 채우고 심지어 동네 골목길도 중세때 처럼 돌들을 박아 조성했습니다. 그래도 집집마다 현대식으로 리모델링 해서 살아들 가는 모습이 보이며 옛것과 현대가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이 더한데 새마을 운동으로 파괴된 우리네 현실을 견주며 괜히 울컥해지기도 했습니다. 여느 알프스의 가옥처럼 창마다 그리고 작은 현관 주변으로 꽃화분이 놓여있고 가을날 마지막 그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마을어귀나 중심가에는 어김없이 수도물이 흐르도록 만들어놓았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천연 약수라 물이 차갑고 맛도 좋아 오가는 순례자들이 목을 축이기에 딱 좋습니다. 유럽의 마을 마다는 광장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 그곳에는 거의 교회가 있고요. 마을이 형성되면서 가장 먼저 짓게 되는 것이 교회. 완공하려면 짧게는 몇년 길게는 몇십년도 걸리고 그러다보니 건축 자재들을 쌓아 보관 해야 될 공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주변으로 상가가 조성되고 차례로 집들이 지어지면 자연 이 장소는 공터로 남게 됩니다. 특히 교회는 여러 이유로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기에 자연스럽게 광장이 만들어 지고 모임의 장소로 사용이 됩니다 그래서 광장을 스퀘어라고 하는데 이렇게 대부분 사각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서로 모여서 한잔의 차나 술을 마시며 정보를 나누고 의논을 하면서 공동체 문화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수통에 물을 가득채우고 동네를 지나 길을 잡고 산길로 접어듭니다. 빨간 띠와 하얀 띠로 그려진 GR54 트레일의 인식 심벌. 프랑스 국기에서 따온 것입니다. GR이란 Grande Randonnée의 약자로 유럽의 장거리 도보길에다 붙여 숫자를 매기는데 이것은 프랑스길에 한하고 그외 Grande Rota (포르투갈) or Gran Recorrido(스페인) 등등으로 제각기 나라들마다 다르게 부르고 있습니다. 직역하면 위대한 여정 정도. 아무튼 이길 표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만 하는데 묘하게 길을 잘못들수 있는 곳에는 희색과 빨간색으로 X 표시를 해서 접근을 금하게 하고 방향이 꺾이는 곳에서는 심벌 아래에 흰색 표시로 꺾이는 방향을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