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바다 펼쳐진 파스텔톤 친퀘테레. 그 길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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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담아 두어도 넉넉할 지중해의 하늘이 우리들 몰래 흘러 내려와 어서 나가자고 성화를 냅니다. 3일 동안 머물 라반테를 떠나 기차를 타고 친퀘 테레의 트레킹의 시작점으로 향합니다. 해안의 지형은 매우 들쭉날쭉한 절벽이지만 천년에 걸친 인간의 집약적인 노력으로 계단식 모양의 마을을 이루었으며 얼마 안 되는 땅이지만 농경에 알맞은 곳에서는 포도와 올리브 나무 과수원이 단정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친퀘테레의 마을 이름들은 모두 유명한 포도주에서 따온 이름이며 1973년에 공식 명명되었으나 역사는 일찌감치 중세 말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을들끼리 서로 닮은 점들이 있기도 하지만 각 마을 특유의 사회 경제적 특징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친퀘 테레 경관의 특징이 되는 이 계단식 경작지는 길이가 12㎞나 되는 곳도 있는데 마을은 사암 블록으로 조심스럽게 돌담을 쌓고 해변에서 날라온 자갈들로 이어 붙여서 축성했습니다. 그 아래 고기잡이 어선들이 뭍으로 끌려올라와 마르지않은 비릿한 바다 내음을 물씬 풍기는 작은 포구. 이제 막 솟아오른 강렬한 태양빛에 불타는 이 해안 마을은 꽃으로 활짝 피어오릅니다. 그 화려하기 그지없는 대형 화환들을 앞에 두고 발길이 얼어붙어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 한동안 신과 인간이 합작한 대형 그림 앞에서 열심히 셔터를 누르게 됩니다. 배낭을 들쳐매고 시작하는 오늘의 트레킹. 몬테로쏘(Monterosso)까지 걸어가 산행을 마감하고 숙소로 기차 이동하는 것입니다. 북쪽에서부터 보면 첫 번째 마을인 이 곳은 요새화된 중심지로 성 크리스토퍼 언덕위에 있으며 17세기 롬바르드 족의 침략이 있던 시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계곡에 자리잡은 이 해안 마을의 가장 유명한 요소로는 1,244년에 지어져 망루로 사용되었던 세인트존 교회당과 옛 성채 유적지 또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17세기의 카푸친 수도원등이 있습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절묘하게 상반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해안 마을인데 바다빛이 그윽한 카페에 앉아 고단한 하루를 쉬게하고 어두워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잔 곡차로 시름을 달랩니다.    베르나차(Vernazza) 마을은 천년동안 레기오(Reggio) 언덕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1,276년에 제노아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독특한 집들은 베르나차 시내물을 따라 바다 쪽으로 돌출해 있는 절벽 위에 있어 바다 쪽에서 다가가면 마을이 보이지 않습니다. 좁은 골목길이 큰길까지 아래로 이어져 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광장으로 연결되고 여기에는 리구리아의 고딕 양식을 보여 주는 대표적 건축물인 성 마가레트 안티오키아 교회(St Margaret of Antioch)가 볼만합니다. 등대처럼 쌓아올린 전망대가 일품 풍경을 만들어주는 베르나차를 지나고 남으로 더 걸으면 만나는 코르닐리아(Corniglia) 마을은 다른 네 마을과는 달리 유일하게 해안이 아니라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곶의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로 성 피터 교회가 가장 높이 솟아 있습니다. 언덕위에 중심가를 두고있는 코르닐리아를 제법 땀을 흘리며 오르면 발아래 펼쳐지는 아말피 해안보다 한갓진 이곳 친퀘테레 국립공원의 리구리안 해안에서는 이 소담한 마을들을 감싼 해변 바위지대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벌꿀로 만든 젤라또로 유명한 곳이라 한 스쿱 담뿍 올린 콘 하나씩 손에 들고 더위와 갈증을 달래며 말입니다. 그 후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볼라스트라(Volastra) 산악 마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건설한 작은 마나롤라(Manarola) 마을입니다. 집들의 일부는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바위 절벽 위에 모여 있고 일부는 그라파 개울을 따라 줄지어 있으며 이곳의 교회 건물들은 모두 14세기 중세에 지어진 것입니다. 마을에 들어서서는 해변 바위 위에다 자리잡고 와인 한잔씩 하며 세상 가장 아름다운 가든 식당이라 자평하며 도시락밥에 라면 끓여서 점심식사를 즐깁니다. 바게뜨에 하몽과 치즈로 식사하는 젊은 연인들을 곁에 두고 말입니다. 감미로운 가을 햇살이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고 찰랑대는 물결이 해초를 일렁거리게 하고 해조들 기륵기륵 노래하며 하늘을 맴도는 그런 풍경이 함께합니다. 가장 남쪽의 리오마조레(Riomaggiore) 마을은 중세에 건설된 또 하나의 마을로 지금은 복개시킨 마조레 시내를 따라 집들은 줄지어 있습니다. 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세인트존 침례 교회와 중세에 지어진 성채가 있습니다. 이처럼 고대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는Monterosso나 Riomaggiore과 같은 마을에서는 천년 숨결이 숨쉬는 그 길에서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며 지역 음식과 포도주 한잔 나누는 것도 이 여정의 번외 즐거움입니다.    이곳에는 2개의 유명한 도보길이 있는데 하나는 알타 비아(Alta Via) 또는 하이패스(High Path)라고 부르는데 이 다섯 마을 뒤의 산으로 연결되어 마을을 포함한 바다 전경을 멀리서 바라보며 걷는 35km 코스이고 두번째 길은 산티에로 아주로(Sentiero Azzurro) 또는 블루 패스(Blue Path) 즉 푸른 샛길로 부르는데 친퀘테레의 5개 마을을 연결하여 주로 푸른 바다를 끼고 걷는 28km 길이의 해안선 길입니다. 세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코스는 리오맛죠레와 마나로라를 연결하는 사랑의 샛길(Viadell'Amore)인데 이 길을 걷으면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다와 산 사이에 그려진 그림같은 오래된 마을 풍경과 원색칠감의 강렬함이 뜨겁게 달구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답니다. 인생 황혼기에 그래도 맺어야 할 인연이 있다면 이 길을 한번 걸어보심이 어떠실런지.. 그런 그 길이 수년전 부터 낙석과 붕괴의 위험으로 폐쇄되어 방문한 연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보수에 드는 경비가 얼마길래 감히 이대로 오랜동안 방치해 두는 것일까! 오로지 그 길을 걷기 위해 찾아드는 방문객들이 무수하건만 참으로 대책없는 나라같아 보입니다. 상심한 그들이 빗장을 쳐둔 출입문에 매달아둔 수많은 자물쇠들 마저 갈색 녹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한스러운 그들 눈물의 색깔처럼... 우리도 하는 수 없이 알타 비아로 길을 바꾸어 산을 넘게 됩니다. 절벽 위에 옹기종기 집을 짓고 구불구불한 길을 낸 모습을 보면 한눈에 봐도 이곳의 사람들이 거칠고 살기 힘든 자연에 적응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은 자연석 그대로를 기반으로 마을을 조성한 모습이 특징인데 집들은 주로 교회와 중세의 성채를 중심으로 모여 있습니다. 작은 항구들은 이들의 전통 삶의 수단인 어업용 배들의 정박지로 해안 풍경미를 극대화해줍니다. 산이래야 일이백 미터의 마을 뒷산이지만 그래도 그 높이에서 내려다 보는 그림같은 푸른 제노아만의 경치가 그저 압권입니다. 땀을 송알송알 이마에 맺히게 하는 비탈길을 오르면 어김없이 심어 일궈논 포도나무들이 추수를 마치고 단풍으로 물들어 물결을 치며 고색 창연한 형형색색의 집들과 마을 건물들이 조화롭게 함께 하니 더욱 수려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나면 한번씩 밀려와서 부서지는 푸른 물결. 잔잔한 물결이 어루만지는 작은 배 띄우고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 연락선은 시나브로 뱃고동 울리며 오고가니 우리네 한려수도 다도해에 와있다고 함께 견줍니다.    여행을 하며 그 지역 음식도 음미해보는 맛도 솔솔한데 이 곳에서는 특히 그러하며 해산물을 선호하는 내 식성에도 맞게 차림표에 그려진 해물 사진만으로도 구미가 당기게 합니다. 더군다나 마늘을 많이 쓰는 이탈리아 음식은 그나마 내 입맛에 맞아 김치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내 식성을 하루이틀은 더 버티게 해줍니다. 친퀘테레는 지중해에 위치한 까닭에 현지 요리에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는게 어쩌면 당연한데 몬테로소의 멸치는 유럽 연합에서 원산지표시보호제로 지정될 만큼 이지역의 명물입니다. 우리는 이탈리아 피자 고명에도 올라오는 이 짜게 절인 멸치 통조림을 사서 고추가루 넣고 마늘 참기름 등등 넣어 우리네 젓갈로 탄생시켜 반찬으로 먹기도 합니다. 친퀘 테레의 산 중턱은 계단식 농경지라 포도와 올리브 나무로 빽빽한데 이를 사용한 페스토 소스와 포카치아라는 이 지역 빵은 찰떡 궁합입니다. 막구운 빵 내음이 찰진 제과점이나 피자집에서 내놓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팬케이크인 파리나타는 짭조름한게 고소하며 바삭합니다. 이런 음식들과 더불어 마시는 와인은 크게 두종류가 있습니다. 지역 이름과 같은 친퀘 테레와 샤케뜨라인데 모두 지중해를 바라보며 배수가 잘되는 언덕에서 재배한 포도 품종이라 당도도 제법 높은게 향미가 진하답니다. 오렌지와 레몬이 잘자라는 이 지역에서 알콜로 변모시킨 레몬첼로가 또한 후각과 미각을 자극합니다. 마지막 날은 배를 타고 다섯마을을 멀리서 조망하기로 했습니다. 해가 각도만 바꾸면서 하루 종일을 비춰주기에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달리합니다. 고기잡이 나갔던 그 어부중 하나가 되어 또 어느 한집을 선택해서 그 집안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마을마다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은 뾰족탑이 있는 교회당. 그를 중심으로 형형색색의 테라스형 가옥들이 아기자기한 미려함을 선사하는데 가을 순풍에 흔들리는 쪽배들이 더욱 한가한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지친 하루 해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돛대들 너머로 사위어 가고 노을이 붉게 검푸른 바다를 적시는 저녁 무렵. 금빛 편린으로 깨어지는 황혼빛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으로 함께 물들어가는 시간. 여행의 잔잔한 감흥과 행복함이 물결처럼 밀려옵니다. 순식간에 수평선 너머로 풍덩 빠져버리는 태양. 그리고 더욱 검붉은 빛으로 타버리는 서산낙조. 나도 바다가 되어 함께 물들어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