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그 길위에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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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 얽힌 전설은 주교인지 목동인지 주민인지 발견한 이가 누구인지 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의 내용은 8세기 경 지나가던 주민들이 밤길을 걷는데 무수한 별빛들이 구릉지의 들판을 맴돌면서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하였고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이곳을 관찰해보니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런 후 이 지역을 '빛나는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의 산티아고 (Santiago de Compostela)'라 부르면서 성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합니다. 스페인 북서쪽에 자리 잡은 이 도시에 이르는 길을 사람들을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로마시대에 볼 때는 이 머나먼 땅 끝 마을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고 그 장도의 험로를 걸어 복음을 전하러 간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이곳을 향해 순례자들은 1000년 전부터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수 십일을 걸었습니다. 느림의 미학. 모든 것을 버리고 왔으니 초조할 그 무엇이 있을까? 그저 삶의 시계를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계에 맞춰 걷고 또 걷다 보면 자연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어 취하게 되는 것. 지금까지 이어온 카미노 길에 선 모든 이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더욱이 저만치 산티아고 대성당이 또렷하게 눈에 차는 단 5km를 남겨둔 고조 마을 언덕에서의 심정은 더욱 그러하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 야고보의 시신을 안치한 채 12세기에 지어진 찬탄할 만하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대성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양식의 황홀한 조화로 지어진 건물들이 모여 있는 산티아고 구 시가지는 세계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아름다운 중세 도시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또한 중세부터 이어온 수많은 순례 길의 최종 목적지이자 스페인의 기독교가 이슬람교와 벌인 국토회복 전쟁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도시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도착한 순례자들은 이 오래된 도시 산티아고에서 모두 긴 여정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그 동안의 순례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산티아고 도심을 들어서고 온통 바닥을 돌로 깔아 놓은 길을 걷습니다. 얼마나 숱한 이들이 거쳐 지나갔는지 윤이 날 만큼 반들반들한 옛 시가지의 돌바닥은 매끄럽고 광채가 나는 구간도 있습니다. 구시가의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가는데 단아한 가옥들이 이웃 간에 나누는 정의 길이만큼이나 가깝게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난 오랜 유럽의 도시를 좋아합니다. 집마다 담장도 없는 집들은 사람 사는 맛의 정이 싹트고 이웃 간의 소통이 있고 길흉사와 애환을 함께 나누던 살가운 거리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끊이지 않을 연대감 같은 것도 있어 참 흡족합니다. 이층에 난 창문들에는 어김없이 화려한 빛의 꽃이 무성한 화분이 놓이고 한두 사람 겨우 서있을 수 있는 발코니는 조석으로 창을 열고 서로 안부를 묻는 소통의 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꽃을 손보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거기에 있는데 오늘은 머나먼 길을 걸어온 우리에게 손을 들어 환영하는 듯합니다. 가장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구 시가지를 들어서니 그야말로 시간을 회귀한 과거로의 여행 같습니다. 아름드리 거석으로 쌓아올린 건물들. 거대한 성당과 그의 부속물들. 세르반테스 광장에 이르면 건축미의 절정을 이룹니다.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이 정녕코 이십일 세기의 오늘인지.. 자연 보는 우리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합니다. 드디어 산티아고에 입성합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목적하고 또 방문하고 싶어 하는 갈리시아의 정신으로 불리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걸음이 참으로 무거우면서도 가볍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왜 없었으랴마는 함께 걷는 동행들의 불굴의 투지에 자극을 받아 나를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대성당의 아치를 통과해 오브라도이오 광장(Praza do Obradoiro)에 도착하고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을 마주합니다. 로마 교황청과 예루살렘과 더불어 세계 3대 성지로서 번성했던 산티아고는 해마다 50만 명이 넘는 순례자로 북적댑니다. 대성당을 방문한 순례자는 가장 먼저 중앙의 기둥을 오른손으로 만지는 자기만의 의식을 치르는데 덕분에 중앙 기둥은 손가락 자국이 선명할 만큼 그 자리가 파여 있습니다. 순례자들을 위해 베풀어주는 정오의 환영미사 시작 전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 먼저 순례 완주 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광장을 돌아 사무소로 갑니다. 100킬로미터 이상만 걸어도 순례를 인정하는데 그 기나긴 여정동안 한 숙소에서 한 숙소로 이동할 때 마다 두 개 이상의 스탬프를 찍은 크레덴셜(순례자 여권)을 제시하기를 요청합니다. 아마도 차량으로 이동하거나 하여 거짓 순례를 하고서는 증서를 발급받는 이들이 있어서 그러나 봅니다. 모두에게 주는 양식에 그저 내 이름을 쓴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한 순례자 증서. 별다른 감흥이 일지는 않았으나 이 작은 수첩에 찍힌 수많은 스탬프가 의미하는 그 깊이와 눈물과 땀의 의미는 나만이 알고 있으니 그 부분에 이르러서는 자못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도우미들과 기념촬영을 함께 하고 나오니 계단 아래 자애로운 성모 마리아상이 먼저 반겨줍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까지도 품었던 성모 마리아. 우리도 어쩌면 그 어머님의 품에서 마지막 위안과 안식을 얻으라는 배려인지도 모릅니다. 이제야 순례를 마친 실감이 나며 길고긴 800km 길 위에 남긴 선명한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참으로 행복했던 길이었습니다. 우리처럼 이른 시간에 도착하거나 전날 늦은 시간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거의 떠나기 전 대성당에서 주관하는 정오 미사에 참석하곤 합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순례를 마친 이들을 위해 베풀어주는 성당 측의 배려로 순례자가 그리 많지 않던 옛날에는 한명한명 일일이 호명하며 축하해 주었다는데 요즘은 워낙 참배객들이 많아 참여한 이들의 나라이름을 부른다 합니다.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미사라 알아듣지 못해도 걸어온 카미노 길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신만의 정갈한 의식으로 삼으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틀 후면 부활절. 사순절을 지나 이틀 남은 부활절 주간에는 그런 미사가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미사조차도 참석할 만큼의 자격이 없노라고 우리를 질책하는 것 같아 아직 다 참회하지 못한 죄의식에 남모르게 부끄러워집니다. 깊은 속죄의 기도를 올리고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다시 나오니 속속 들어오는 순례자들의 기쁜 환성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그 방법도 가지가지로 폴을 하늘위로 향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조각해둔 발 조형물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조아리기도 집단으로 드러누워 고생한 발을 들어 올려 보이며 사진을 찍기도 그 동안에 쌓였던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는데 정말 품고 온 사연만큼이나 순례를 마감하는 개인마다의 의식이 다양합니다. 우리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과의 환희와 기쁨을 함께 하려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 길 위에서 발에 물집이 잡히고 까져서 피가 흐르는 발을 절뚝대며 걸은 것일까? 아직 그 답이 확연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결코 그 답을 구하려 조급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처음 시작했던 카미노의 속도처럼 나만의 인생 속도계에 맞춰서 천천히 구할 것입니다. 한없이 여유로워진 시간. 우리들만의 축배를 들며 나른한 휴식을 만끽하는데 시간은 그대로 정지된 듯 소리마저 사라진 열반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