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그 길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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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테는 신의 손이 빚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이 굴려온 역사의 바퀴와 마주하기도 합니다. 서쪽으로 크로다 로사(Croda Rossa)와 남쪽으로 크리스탈로(Cristallo)를 마주하고 선 발란드로 산장 앞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군의 참호였던 건물이 부서진 채로 남아있으며 돌로미테 전체 구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장은 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인 산악전쟁의 현장입니다. 이처럼 돌로미테 도는 길 곳곳에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상흔들이 역사로 새겨져 있습니다. 왜 그토록 무엇을 위해 그렇게 처절하게 싸워야 했을까! 인간의 그 끝없는 탐욕과 위정자들의 폭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며 비통한 가슴을 부여안고 그 아름다운 7월의 꽃길을 걸어갑니다. 아침이 열리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십니다. 믿기지 않을 만큼 그렇게 밤을 새워 비가 쏟아지더니만 이 아침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현기증이 일 정도로 맑고 밝습니다. 바위산들에 가려져 손바닥만한 하늘에는 푸른 하늘과 하얀구름이 원색으로 드리웠고 새들의 노래소리 활기찹니다. 진한 원두 커피향으로 아침을 먹고 몸을 추스린 후 드디어 돌로미테 알타 비아 1 종주를 위해  Dobbiaco를 거쳐 1494미터 고도에 있는 이 종주의 공식적 시작점인 스펙타클한 에메랄드 빛 Braies 호수에 당도합니다. 호수와 산이 맞닿아 호수 아래의 세상으로 가는 문이 있다는 전설이 얽혀 있는 곳. 여기서 8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종주를 위한 여장을 단단히 꾸리고 기념 촬영을 한 후 드디어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바위산들의 그늘이 드리운 호수 주변의 송림을 지나면서 피톤치드 가득 흡입하며 호수 끝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면 가파른 고갯길 치고 올라가는 계곡의 시작점에 당도하게 됩니다. 일단의 무리들이 장도의 산행을 위해 스트레칭들을 하고 있고 이를 신기한듯 소때들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길이 품은 풍경은 참으로 다채롭습니다. 에메랄드빛 맑은 호수 주변으로 잣나무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눈앞으로는 바위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길고 가파른 바위 능선길을 지나면 초록빛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초원에 방목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빽빽하게 자란 침엽수들로 그늘진 숲을 빠져나오면 들꽃 핀 초원 위로 점점이 흩어진 흰 바위들이 만드는 초록과 흰산의 낯설면서도 눈부신 조화를 만나기도 합니다. 백팩킹의 첫날은 언제 고통을 수반하는 힘든 날입니다. 일정동안 먹을 양식에 모든 장비들이 고스란히 배낭에 촘촘히 채워져있는데다 오름길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첫날의 넘치는 호기와 체력이 뒷받침을 해주기에 견뎌낼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천미터 고지를 오르는 오늘의 여정. 30kg이 넘는 배낭의 무게에 고도를 올릴수록 쉬어가는 시간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잦게 됩니다. 오름길 중반을 넘기면서는 결국 덜 먹자며 제법 무게가 나가는 간식들을 포기하고 길가 바위위에 나란히 진열해놓고 다시 올라갑니다. 뿌리치지 못했던 욕심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서야 버리는 못난 인간의 초상입니다.  날씨는 너무도 화창하여 어제 걸었던 Tre Cime의 삼형제 봉이 근엄하게 서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산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그재그 길을 오르고 올라  저 아래에 비엘라 산장의 모습을 보일 즈음 고갯마루에 서면 작은 예수상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작은 성호를 긋고 비엘라 산장을 지나 야생화로 가득한 초원을 지나면서 라면 끓여 밥말아 먹고 다시 콧노래 부르며 평지 초원길을 달리듯 걸어 갑니다. 저 아래 보이는 세네스 산장. 딸랑딸랑 워낭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고 푸른 초원 위로는 들꽃이 하늘거리는데  어디선가 하얀 앞치마를 한 알프스의 소녀가 달려와 갓 짠 우유라도 내밀 것 같은 풍경입니다. 눈을 들면 어디서나 거대한 Croda Rossa (3246m), Cristallo (3221m), Sorapis (3205m), and Tofana (3243m) 산들이 파노라마 처럼 둘러싸여 있어 황혼녘이면 바위산이 펼치는 빛과 그림자의 마술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세계 최고 시설의 산장 덕분에 깃털처럼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곳. 이탈리아가 숨겨놓은 천상의 트레일. 알타비아 1. 생맥주 큰잔으로 시켜놓고 저녁을 기다립니다. 마지막 사위어가는 태양이 식어 갈때 따스한 음식접시가 배달되어 옵니다. 한잔술에 고단한 하루가 취해가고 고산 준봉들이 우리를 호위하고 있으니 이 산장에서는 신들과 함께 겸작하며 정찬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