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안나푸르나. 그 길위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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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의 일상들이 매일매일 신선하게 펼쳐지고 그 걷는 일과에 또한 매일매일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말죽거리에서 하루를 유하며 아예 밤새 서서 잠잔 나귀들의 워낭소리에 잠이 깨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벽 3시. 산정에서 먹을 간식들을 챙기고 채비를 다 갖춘 뒤 동행들을 깨웁니다. 4시에 그저 문이래야 우리 제주도 대문처럼 돌기둥 구멍에 대나무 하나 끼워둔 것이지만 그런 로지 문을 열고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냉기 머금은 기류가 고산에 있음을 자각시켜주지만 그래도 계절은 여름을 향해 가는지라 견딜만합니다. 머리에 전등 하나씩 달고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며 푼힐 전망대로 향합니다. 가지런하고 소담스레 깔아놓은 돌계단을 밟으며 오르는 길. 3천을 넘기는 고도인데도 산소 결핍으로 인한 숨가픔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여늬 산들은 3천을 넘기면 거개가 수목한계선을 넘어버리는데 반해 이곳은 삼림이 울창합니다. 새벽이면 가장 왕성한 광합성 운동으로 산소를 배출해내니 자연 산소 부족으로 오는 고산증 증세가 덜하겠다는 나만의 지론을 펴며 검문 매표소를 지납니다. 입장료 우리돈으로 5백원 받으려고 이 생 새벽에 나온 공무원이 안스럽기 까지 한데 나중 산정에서 대충 헤어보니 수백명이 오른지라 티끌이라도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금언이 그냥 지어낸 소리가 아니라는 수긍이 듭니다.    산길에 긴 등불행렬이 이어집니다. 어디서 머물다 나왔는지 불의 행렬이 장관입니다. 불이 길을 열고 차갑게 맺힌 이슬이 내 발길에 채여 영롱하게 흩어집니다. 푼힐 일출은 우리네 인생살이 처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운도 따라야 볼수 있다는 그래서 삼대적선을 한 사람에게만 열어 보여준다는 곳입니다. 천하제일경이 있는 3,193미터 고도의 푼힐 전망대로 가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고 가슴이 터지기 직전까지 이어지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오기같은 각오도 생깁니다. 기백킬로미터의 전 여정에 이 푼힐 오르는 구간이야 새발의 피인데 창연한 히말의 고산 준봉을 비추며 차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일각이라도 늦출수 없다는... 가슴에 산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신의 나라 네팔에서 신들의 산책로 히말라야 트레일의 백미가 이 푼힐 전망대의 일출이 아닐런지. 짊어지고 간 침낭을 안나푸르나 연봉들과 마주하는 전망대 난간에 깔고 줄지어 앉아 해가 뜨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산들이 구름뒤에 숨어서 자태 보여주기를 아끼는데 거스릴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멀리 여명이 걷히고 햇살도 도톰해집니다. 어둠의 하나였던 설산들의 윤곽이 서서히 분리되고 하늘이 한뼘씩 열리는 순간. 태양은 기다리는 사람들은 외면하고 7,8 천의 고봉 성산들과 먼저 두루두루 입맞춤을 하고 그제서야 우리와 눈맞춤을 하잡니다. 뒤이어 해가 홍조띤 부끄러운 얼굴로 솟는데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풍요의 여신 만년설 안나푸르나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고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가 덩달아 기지개를 켭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산 이라는 다울라기니가 금빛 화관을 쓰고 출연을 하니 이윽고 붉은해가 얼굴을 내밉니다. 남봉을 시작으로 차례로 세례를 받는데 빛의 파노라마가 빚어내는 휘황한 풍경. 생을 막아서던 온갖 내 삶의 도전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것처럼 저 일출의 산고 끝에 이루어 낸 태양의 솟구침이 더욱 장렬합니다. 여느나라와 다른 일출. 푼힐에서만 볼수 있는 비경입니다.    로지로 돌아와 알찬 노동 뒤에 맛보는 꿀맛같은 아침식사를 나누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갑니다. 푼힐의 반대편에 그만큼 높이 올라가면 랑게다나 전망대가 있는데 현지 가이드들은 여기서의 산세 조망이 더욱 빼어나다고 추천합니다. 일출의 의미만 부여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로지를 나서니 마을로 긴긴 말의 행렬이 이어지는데 등짝에는 모두 얇은 돌들로 가득채워진 광주리를 메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머문 로지 바로 옆에 새로운 건축물에 필요한 석재를 운반하나 봅니다. 휘파람 소리에 따라 멈추고 가고 방향을 잡는 동물들이 마냥 신기합니다. 처음 이 지역은 그저 거의 옛날식 집들만 몇 있었는데 수도 없이 찾아드는 순례자들 때문에 지금은 현대식 로지들이 즐비하고 여름 우기 이외에는 몰려드는 트레커들을 다 수용하지 못해 계속 신축한다고 합니다. 그 현장에 필요한 석자재를 실어나르는 행렬 또한 장관이기도 하거니와 돌벽을 쌓는 장인들의 손기술도 예술입니다. 그 얇은 돌장을 벽에 붙이고 모양을 내는데 하나의 작품입니다. 그 말들이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 랑게다나 전망대를 향해 가는데 푼힐과 거의 대칭의 상태라 오름의 각도와 길이가 장난이 아닙니다. 바람도 제법 쎄지더니 자욱한 안개가 몰려오며 기온도 급강하합니다. 네팔 깃발이 강풍에 펄럭이는 전망대. 자욱한 개스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의 허락이 없는 걸 보니 이 시각 우리는 풍요의 여신을 볼 자격이 없나 봅니다.    산. 언제부터인가 내 삶 깊숙이 자리한.. 미주 트레킹을 운영하면서 지구촌 오지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다니기를 10여년. 처음엔 그저 경탄을 금할수 없는 풍광들에 압도되어 그런 비경만을 쫓는 것이 최고 목적이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번씩 내가 사는 환경에서 온전히 벗어나 전혀 다른 환경속에 나를 던져버리면 주관적이었던 내 삶의 진행을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모호했던 나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후회없는 삶을 위한 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야말로 이런 낯선 길에서 얻는 가장 소중한 경험입니다. 내 삶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마지막이 아름다울까? 이런 나자신과의 대화 속에서도 귀한 시간들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다음 이어질 트레킹 투어에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아름다운 동행들과 소중한 나눔을 가지게 할까? 조금 멀게는 2020년 까지 어떻게 일정을 세워야 세계 100대 트레일중 50개를 효과적으로 마감할 수 있을까? 더욱 멀게는 셰난도어든 지리산이든 깊은 곳 자연에 귀의하여 소담스런 산장 하나 지어 글이나 쓰고 그 동안 산에서 맺었던 귀한 인연들이 찾아오면 한 잔 술을 나누며 산과 사람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갈 것인가의 고민과 인생 설계를 하는 것입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향방으로 말입니다.    3천 고도의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게되는 2천2백의 반탄티까지는 끝없는 내리막길이 이어집니다. 이길 위에서는 여러 군상들을 만납니다. 원주민 둘이서 목재를 마련하는데 사각의 높은 지주대를 설치하고 아래 위 두사람이 긴 톱으로 서로 협조하여 켭니다. 굵은 기둥용 뿐만이 아니라 얇은 합판도 아주 정교하게 썰어내는 것도 놀랄일이지만 그 속도가 기계톱에 버금가는지라 경탄을 금할수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속에서 발휘하는 인간의 노력과 지혜가 빛나보이는 순간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니 돌탑밭이 나옵니다. 시내가 흐르는 넓은 돌밭에 수도 없는 탑들을 쌓아 놓았습니다.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바라고 구하는 마음을 쌓는 것은 다름이 없는 듯 저기 저쯤에 서양 친구 커플이 마주 앉아 정성스레 열심히 돌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 곁에는 셀파가 무료한듯 무심한 표정으로 잔돌을 물에다 하나씩 퐁당퐁당 던지며 기다려주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니 어제 저녁 숙소에서 말을 섞었던 독일에서 온 이들이었습니다. 무엇을 소원하느냐 물었더니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빌었다고 합니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함께 빌어주겠노라고 마음을 보태 줍니다. 이처럼 낯선 길 위에서는 같은 곳을 향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열게 됩니다. 무심하게 우리 곁을 흘러내려가는 티없이 맑은 시냇물은 문명 세상에서 가져온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영혼마저 세척하고 가라고 합니다.    석곡이 덕지덕지 세월만큼 두터운 숲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지금까지만도 수만개의 계단을 밟았다며 고충을 이야기 하는데 참 많이도 계단길을 오르내립니다. 아열대성 밀림이라 수분이 항상 풍부하니 온갖 초목들이 산하에 가득합니다. 계절을 잊은 고사리가 여름으로 치닷는 지금에야 조막손 새순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한 시공에서 사계절이 공존하는 히말라야의 풍경입니다. 물기먹은 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는데 일행들로 부터 벗어난 셀파 하나가 짐을 묶은 밧줄을 손보고 있었습니다. 오십은 되어보이는 초로의 무척 왜소한 체구에 자신의 두배격인 더플 백 두개를 묶고 있는 광경. 어쩌면 힘에 부쳐 쉬기 위함의 핑계로 매무새를 고치는 척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 와중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건네주는 나마스테. 자신이 지고가는 삶의 하중도 무거울텐데 이방인의 무게마저도 대신 지어주는 모습이 안타까움과 함께 외경심도 우러납니다. 앞서가는 그런 그를 지나치다가 다시 되돌아가 무엇인가 답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간식용으로 지녔던 양갱을 하나 건네줍니다. 또 한번 나마스테. 조금도 비굴함도 없고 조롱도 없는 순수하고도 따스한 마음의 교류. 평탄한 내리막길이기도 했지만 내 발걸음은 더욱 가볍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구수한 냄새가 계곡을 타고 올라옵니다. 오늘도 어느 낯선 곳에서 여장을 풀고 하루밤을 머물다 가겠죠. 저 하늘에 구름이 바람따라 흘러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