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안나푸르나. 그 길위에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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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일어나 찬연한 ABC의 일출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모두 우리의 기대에 불과했지만.. 벅찬 기다림으로 네시도 안돼 눈이 떠지고 옅은 창으로 밖을 보니 가는 비가 내립니다. 일출의 장엄함을 보는 것은 물 건너간 일이고 그저 하산하기전 산군의 장대한 풍광을 찰나라도 볼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이 계절에는 아침과 오전에는 히말라야의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상례이기에 한가닥 희망을 품고 아무 생각없이 길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는데 밖에서 가이드의 외침소리. 빨리 나오랍니다. 거짓말 처럼 안개와 개스가 걷히고 장막뒤에서 산봉들이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일행을 독촉하여 전망대 가장 높은 곳으로 인파들을 제치고 올라갑니다. 이 티없이 맑은 풍경에 먼지같은 인간의 티끌을 남기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보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소망으로 말입니다.    우리 일행보다 먼저 능선에 올라 구석구석 비추는 태양. 정갈한 순백의 설산 모습이 제대로 그려집니다. 먼저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1봉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차푸차레 까지 그 장엄한 히말라야의 대 서사시가 그려지는 순간입니다. 위대한 영화의 명장면 같이 감동적인 배경 음악이 환청처럼 깔리면서 펼쳐지는 파노라마. 그 높이 만큼 올라야 볼수 있는 구름도 다 못가리는 이 웅대한 설산앞에서 마냥 넋을 잃고 바라볼 뿐입니다. 수만년 이고진 눈의 무게. 내 삶의 무게는 저기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 없는 하중일까! 눈이 멀어야 나올수 있다는 순백의 설산 히말라야. 우리는 저산 앞에서 그저 한줌 티끌. 환희 뒤에 길어지는 침묵. 아프기도 행복하기도 했던 시간들이 스치며 지나갑니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은 바람처럼 우리 여정의 희망도 고통도 시간속에 지나가고 흘러갑니다. 지상보다 천상에 더 가까운 히말라야 길위에서 이제 우리는 또 다시 희망을 품고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돌아서면 이내 희미한 추억이 되겠지만 이 순간 만큼은 짧지만 찬란했고 너무나 아름다워 영원할것 같은 안나푸르나의 따스한 온기는 오래토록 그리움으로 남을것입니다. 이 머나먼 여정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고 다시 당찬 각오와 함께 힘차게 나의 길을 갑니다. 아. 진정 행복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산하는 길. 인생이란 산을 오르는 것 같아 그 길에서 모든 것을 만나고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으로 남는 것. 그래도 그 그리움이 오래 지속되도록 문명의 이기의 힘을 빌어 수많은 기록을 남겨봅니다. 오래된 숙원을 이룬 후의 해탈감 같은 심정으로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더없이 투명하고 깨끗한 풍경속으로 들어갑니다. 느릿한 걸음으로 깊게 자연을 흡입하며 내려가는 길. 걸어 온 길을 뒤돌아 보면 우리는 저 산등성이 넘어 구름 속에서 걸어왔습니다. 이 거대한 설산군을 품에 안고 이 웅대한 자연과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마구 심장을 뛰게 합니다. 눈밭 하산길. 모두 나이를 잊고 어린 아이들이 되어 눈밭을 뛰고 뒹굴며 눈싸움도 눈썰매도 타며 깔깔거리며 웃음의 잔치가 벌어지며 이 기쁨의 순간을 최대로 만끽합니다. 화사한 햇살은 엷은 구름에 가려 온화하고 화사하게 비추는 이 아름다운 계곡에서 오름의 여정을 마감하는 세레모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과 가없는 행복감. 세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쉽지만 또 짧은 순간이지만 가장 극적인 장면을 기꺼이 허락한 풍요의 여신에게 속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안나푸르나여 마차푸차레여!   어느 맥주 광고에서 보았던 배경이라고 주창하는 일행의 고집스런 제안으로 조금 공을 들여 리지를 타고 내려옵니다. 좌로는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그 뿌리까지 드러나는 고봉들. 우로는 넓은 계곡의 설원. 히말라야 고원의 풍광이 한가득 눈에 잡힙니다. 차마 두고 가기 아쉬운 발걸음인데 여신은 이제 그만 가라며 안개구름을 불러올려 베일로 가려버립니다. 이어지는 하산길 2천 미터. 대나무 밭이 많은 밤부까지 내려갈 일정인데 MBC를 지나고 자욱이 올라온 안개 구름이 마침내 비가되어 내립니다. 비옷으로 갈아입고 내려가는데 짙은 비안개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희미한 목전의 숲길 뿐.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다 볼것도 없고 무릎은 시큰해오니 참 별 재미없는 하산길입니다.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렸던 아주 조금전의 눈이 간사하게도 변심을 합니다. 목적을 달성한 후의 허탈감도 있겠지만 점점 더 먹지못할 네팔리 음식에 힘이 빠지고 걸음을 옮기는데도 따분한 졸음이 쏟아집니다.    계절에 따라 자연의 색도 다르고 시각에 따라 빛도 달라집니다. 싸늘한 비안개에 젖어 몸이 무거워질 즈음에 나타난 로지 하나. 매케하지만 따스한 장작불의 온기가 무릎 보호대와 지팡이에 의지한 채 간단없이 이어지는 하산길의 내 지친 발걸음을 잡습니다. 나즈막히 내려앉는 속삭임. 나마스테. 두손모아 마음도 모아 안녕을 기원하는 인사. 그 반가운 인사에 유혹되어 로지 안으로 들어서 추위를 녹이며 맵고 뜨거운 신 라면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달래봅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일하는 사람들의 간단없이 조잘대는 수다가 가득한 로지의 분위기. 히말라야에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트레커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지만 저들에게는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에 저렇게 수런수런한 수다로 피로함을 푸는 것 일까! 이 순수함은 저 산이 가르쳐준 것 일까! 황량한 바위산과 풍요로운 설산. 지상에서 가장 험한 길. 거친 바람. 그 자연에 기대어 사는 소박한 모습들. 비루하고 청결하지 못해도 정이 묻어나는 산골마을의 매력. 우리의 옛모습 나의 그리운 유년의 시절을 봅니다. 나귀 한마리 지나칠 좁은 길과 깎아내린 산이 터준 길 위에서 만난 길동무. 바람 한결. 구름 한점. 풍경들.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에델바이스의 꽃말처럼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