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거주하는 땅. 에베레스트. 그 길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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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없이 맑은 하늘이 열리고 오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마을을 들어서거나 나갈 때는 어김없이 불교 경전을 새긴 판각이 있고 원통형을 돌리게 합니다. 마을 주변으로는 언제나 깃발이 휘날리고... 깃발에 새긴 복음이 사바세계로 널리 퍼져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염원이 담겨 있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탑을 돌거나 원통을 돌리면서 자신들의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여긴답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청명한 일기를 주십사 빌며 길을 시작합니다. EBC는 테베트 풍이 매우 강합니다. 영토는 네팔이지만 테베트 족인 셀파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살고 있는 셀파족들의 고향입니다. 오늘 하루를 내리게 될 남체 바자르가 바로 그 셀파족들이 무수히 모여사는 본향이자 수도격인 대형 마을입니다. 화려한 호텔부터 각종 카페나 음식점 그리고 기념품점들이 가득차 거리들은 생기가 넘치고 티베트 마켓이라고 매일 장도 서는데 오늘은 거기서 닭을 사서 백숙을 해먹으리라 다짐하며 갑니다. 가는 곳마다 의미있는 장소마다 대형 탑과 불교 경전을 새긴 판각들이 즐비하고 이따금 거대한 바위를 빼곡하게 양각으로 새긴 대역사의 경전들도 만나게 되니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그 악착스런 셀파족들이 복속된 중국과 네팔의 분쟁으로 국경이 봉쇄되고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하고 규제가 심하게 되었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셀파족들은 이 계곡의 주인이 되어 상권을 휘어잡고 수전노 같은 양태를 곧잘 보이는데 미국 이민 생활 32년차인 나로서는 이국땅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친다는 동병상련의 연민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나 너무 심한 경우도 있어 아주 질색입니다. ABC쪽과는 달리 순수함이 점점 없어지고 이속만을 너무 챙긴다는 질책이 많아지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히말라야의 산길은 호락호락 하지가 않습니다. 왜 그리 롤러코스터 처럼 오르내림이 많은지 방문객들은 인내심의 한계를 제법 경험합니다. 한걸음 옮기기도 숨이 차고 다리 근육이 묵직해지는데 고무 슬리퍼를 신고 수십킬로 짐을 메고 날듯이 뛰어가는 그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이들만의 독특한 문화의 하나로 지팡이로 사용하기에는 짧은 T 자형 굵은 몽둥이들을 하나씩 들고 갑니다. 험한 길을 오르내리다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가고 싶을 때는 아무데서나 짐보따리를 맨 채 그 T자형 몽둥이에 짐을 올려놓으면 됩니다. 굳이 번거롭게 그 무거운 짐을 땅에 내리고 다시 애써 들쳐매지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18세를 넘어야 포터일을 할수 있는데 막 그렇게 쉬었다 떠나는 가녀린 체구에 앳띤 얼굴의 어린 두 아이를 봅니다. 가만 박스마다 적혀있는 무게를 합산해보니 딱 100kg이라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고 지고 가는 그들의 삶의 무게가 너무도 애처럽게도 무거워보입니다. 스치는 그들의 입에 캔디 하나씩 물려주는 위로를 줄수 밖에 없는...   늘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곳에서도 다양한 군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별하게 눈에 띄는 몇 사람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12일간의 종주를 위한 준비가 전혀되어 있지 않은 차림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그 비난과 앙탈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오르는 커플. 저들의 저런 여행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여겨집니다. 그리고 적어도 젊은 시절 산악인이나 등산 마니아였을 아빠의 손을 잡고 오르는 열살도 되지않는 두 아들과의 동행. 하나는 아미 고산증의 고통에 두통을 호소하며 울먹이는데 다른 하나가 등을 쓰다듬어주며 위로를 합니다. 응급처치를 해주는 아빠의 손길. 이 한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들은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또 자신들의 아이와 함께 이런 아름다운 동행이 이어지겠지요. 남체 마을 들어서기 전에 잠시 등록을 위해 동구 밖에 앉아 대기하면서 서로의 나이를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압권은 독일에서 왔다는 82세의 노인분. 서양인 답지 않은 왜소하고 깡마른 체구에 해맑은 웃음이 떠나지 않는 밝은 얼굴로 아들과 손주들 그렇게 3대를 데리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서로 챙겨주고 위안이 되어주며 이 힘겨울 종주길을 그렇게 헤쳐나갑니다.    디보채 숙소를 떠나 완만한 경사의 계곡길을 걷는데 일단의 야크 무리들이 워낭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등에는 묵직한 짐들이 실려있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터를 잡고 사는 이들에게 팔 생필품이나 로지에 공급하는 개스통과 물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야크는 생각보다 큰 덩치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 검은 긴털을 입고 있어 무척 위압적인데다 아주 공격적인 뿔로 호전적인 동물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게 온순하다 합니다. 특히 이 야크의 배설물은 겨울을 나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요긴한 땔감으로 쓰여지는데 아낙들이 검은 반죽을 담벼락이나 돌담위에 덕지덕지 붙여 말리는 작업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야크 뿐만 아니라 말과 당나귀들도 모두 수없이 이어지는 물품 운반에 동원되는데  힘겨운 삶의 흔적으로 등가죽이 헤어져 있음을 보며 한마디씩 합니다. 어쩌다 이런 곳에서 태어나 죽어라 고생하며 일만하다 죽어가노. 짐승이나 사람이나 태어나기를 좋은데서 해야지라고. 마을을 벗어나 아직 아침안개가 걷히지도 않았는데 어린 소녀가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큰 밭떼기 하나를 벌써 반이나 파놓고 허리가 아픈지 몸을 일으키며 이마의 땀을 훔칩니다. 설산을 배경으로 한 이 풍경을 담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수줍은 표정으로 몸을 돌려 다시 일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괭이질에 폴폴 일어나는 삶의 고단함. 에베레스트 만나러 가는 길의 한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