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종주 1.

파타고니아! 대 자연의 숨결이 살아있는 역동의 땅.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밟아봐야 한다는 지구 최후의 파라다이스. 길들여 지지 않은 거친 바람이 지배하는 폭풍의 대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원시의 땅. 이토록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 이방의 땅에서 트레킹은 토레스 델 파이네 경내의 토레스 호텔에서 시작이 됩니다. 파타고니아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안데스 산군과 동쪽의 광활한 평원대지인 팜파스로 나눠지는데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시작하여 안데스 산맥을 관통하고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지역과 피츠로이 산군까지 이어지는 파타고니아 트레킹. 이미 여러 번 이 길을 오고 갔었지만 언제나 가슴이 뛰는 길이며 인도해온 많은 분들은 오늘 드디어 그 미답의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195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토레스 델 파이네는 다양한 식생들의 분포를 보는 파타고니아 30개의 국립공원 중 하나로서  검은 목 고니가 계절을 잠시 잊고 한가롭게 해안가에서 놀고 있고  낙타과지만 체형은 사슴 비슷한 과나코가 무리지어 다니며 경내의 목가적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과나코는 양과 소와 더불어 은근한 불에 오래동안 구워내 기름기를 빼내고 먹는 아사도라는 이 지역 전통구이 요리로서 최고로 치는 방목축입니다. 유구한 생명체들이 모진 자연에 순응하며 아름다운 인연을 항구히 이어가는 파타고니아. 시도때도 없이 불어오는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광풍의 대지에 뿌리를 온전히 다 드러내놓고 처절한 생명을 이어가는 나목들. 견디기 힘든 자연환경에 속살마져 온전히 다 드러내 보여야 하는 이 혹독하고도 척박한 땅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저 살아 있음 만으로도 외경으로 다가옵니다. 죽기전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곳, 거대한 설산들이 우뚝 솟은 푸른거탑 파이네. 거센 바람과 파이네의 연봉들을 가까이서 보며 걷는 W 트레킹. 바로 그 폭풍의 대지를 걷는 우리들. 오늘 우리는 그 명경을 뇌리에 새기고 가슴에 품기위해 여장을 꾸립니다.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거점. 프에르토 나탈레스. 버스를 전세내서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오가니 시간 배정이 자유롭고 개인적인 시간도 낼 수 있었습니다. 공원 입경신고를 하면서 비싼 입장료를 내고 분함을 삭히는데 전 방위로 옥색 호수들이 펼쳐지며 설산들이 하나둘 얼굴들을 내미니 순간에 어지러운 감정들이 정리가 되어버립니다. 버스에서 내려 황금빛으로 변한 잔디를 밟으며 오늘의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황급히 점심을 해결한 후 파이네로 향합니다. 던지는 시야마다 펼쳐지는 이승이 아닌 듯 여겨지는 파이네 산군을 바라보니 모든 번다한 근심이 일시에 빠져 나가 버리고 깊은 무아경에 젖어듭니다. 안개에 가려 몽환적으로 일렁이는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거대한 설봉들. 거칠게 조각칼로 쪼개놓은 듯 아찔한 첨봉들. 베일로 가려진 한 너울 시선 너머로 장엄하게 드리운 숨 막히는 비경들이 눈에 가득 밟혀옵니다. 무엇이 좀 부족하고 불편하면 어떠랴? 저리도 아름다운 자연이 어서 내 품으로 와 안기라 손짓하는데 마음이 참으로 가벼워지는 순간입니다.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이 여정을 즐기며 행복하리라 다짐을 합니다. 4일간의 식량과 장비 그리고 부수적인 준비물로 가득 찬 배낭들을 메고 17명이 띠를 만들어 오르는 길. 원색으로 튀는 동행들의 패션감이 파타고니아의 한 능선을 화려한 꽃으로 피게 합니다.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일. 페루 마추피츄와 함께 남미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인구에 회자되는 이 트레킹. 공원 내 루프형태로 된 전 구간 종주는 일 주일 이상 요구되며 더러는 야영을 할수 밖에 없어 캠핑 장비를 모두 두 어께에 짊어지고 하는 지라 적지 않은 고난을 감래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트레커들은 3박이나 4박으로 진행되는 W 트레킹을 선호하는데 이 코스를 걸으며  파이네의 최고 경관을 여기에서 거의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반구의 겨울 한철만 트레킹이 허락되는 계절의 반대 남반구 천형의 땅은 그래서 이 W트랙을 위한 한정된 수의 산장이나 캠핑 사이트의 예약이 일년전에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지구의 끝.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이 가득 채워진 곳. 눈으로 덮인 준봉들은 수천만년전 지각변동으로 형성된 피오르드 형의 산으로 화강암의 돌출과 융기로 웅장하고도 수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만 속삭이는 파타고니아에 정주한 신의 목소리. 시원스레 흘러가는 계곡물을 역류하여  홀가분하게 오르기 시작하니 싱그러운 자연의 향취가 우리의 전도를 축복하여 줍니다. 꽃내음과 나무 향이 후각을 신선하게 자극하는데 4시간을 쉬임없이 올라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으니 가능한 한 말수를 줄이고 간격을 유지한 채 부지런히 발바꾸기를 합니다. 이제 마지막 너덜지대의 돌밭길이 나타납니다. 여전히 신비에 쌓인 파이네 삼봉은 머리부분만 보여줄 뿐이어서 기어코 우리 두눈으로 확인하고만 싶어 무거워진 발들을 옮겨 딛는데 숨이 이내 턱까지 차오릅니다. 한담을 나누던 좀전의 그 미소가 비명으로 바뀌는 시간입니다. 지그재그로 경사를 죽인 안전 표시판이자 이정표인 막대 표시물이 지금은 구원과 기원의 상징인 십자가로 보여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드디어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찬연한 햇살. 그 붉은 빛에 물들은 파이네 첨봉의 장대함에 온 몸에 전율이 일고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조각칼로 거칠게 쳐낸듯한 화강암 돌기둥. 그것이 그대로 3천 높이의 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아래는 만년설이 녹은 물을 조용히 받아들여 옥색으로 간직한 호수가 풍치를 더 신비롭게 해주고 그 웅장한 위용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처럼 경이로운 대 자연은 자연스레 인간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습니다. 한없이 작아지는 대 자연 앞에서 겸허하게 살자고 나를 독려도 합니다. 호수에 떠있는 에매랄드 빛 유빙의 형상이 가만 V자를 만들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보지 않은 가장 느리게 가장 깊은 심호흡을 하며 대자연과의 동화를 시도해봅니다. 자연속에서 좋은 동행과 함께 그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트레킹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일 것입니다. 파타고니아 처럼 대자연은 눈이시리도록 아름답지만 어쩌면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을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를 내세우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가혹한 파타고니아의 바람도 잠들어 주지 않을까? 태초의 신비를 잉태한 채 자연과 인간과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역동의 땅. 파타고니아. 그래서 사람들은 파타고니아가 세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땅이라고들 말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