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이 함께 걸어온 길 차마고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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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의 남쪽 운남성 그리고 물의 도시 여강.  유난히 물을 좋아했던 소년은 이순의 나이를 넘어서도 그 소망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동해의 드넓은 바다에서 꿈을 키워 태평양을 건너고 대서양과 캐리비안 수중을 탐닉하다가 북유럽의 바다들을 섭렵하고 지중해의 미려함에 유혹되어 제법 숱하게 찾아가곤 해왔습니다. 물만 보면 좋아했던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그리워하는 초로의 나그네는 그 물의 마력에 이끌려 중국의 변방 구름의 남쪽마을 운남성으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하늘을 날며 초합을 펼치던 중국 무협영화를 즐겨보던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왔던 중국의 오래된 고을. 와호장룡의 주윤발이 아름다운 여인을 품에 안고 대나무 숲을 지치며 날아 연못위를 차고 오르는 장면이 있을것만 같은 물의 도시 여강. 아름다운 물의 정원이 곳곳에 있는 동양의 베니스라는 이곳. 해발 2,300미터의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으며 북경이나 상하이 등지 보다 먼 서쪽의 내륙에 있고 한족이 중국의 대표 민족이라면 이곳은 나시족, 티베트족들을 비롯해 다양한 소수민족이 살기에 그들이 만들어 온 문화와 견주기 힘든 자연 풍경이 너무나 특이해 중국 국민들도 가장 가고 싶어하는 국내 여행지 일순위로 뽑힌다고 합니다. 멈춰버린 시간속으로 들어가는 여강은 인류 최초의 교역로인 그 장대한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고도로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며 히말라야의 한자락으로 웅장한 아름다움을 지닌 옥룡설산과 더불어 운남성 여행의 백미라 불립니다. 800년 역사의 고즈넉함을 풍기며 옹기종기 모여있는 전통 가옥과 동네 한가운데로 흐르는 맑은 수로 그리고 차라리 티벳인들의 따스한 품성이 전해오는 나시족들이 만들어온 중국 대륙 깊숙이 숨겨져 있던 고대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채 지금까지 지켜온 여강고성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나시어로 ‘진사강이 머리를 돌리는 곳’이란 뜻을 지닌 여강은 한때 차마고도의 중심지로 이 곳에서 무역과 상업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도시가 지닌 오랜 역사로 인해 1997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도시를 적시며 흐르는 수로 옆에는 고색이 창연한 이층 목조건물이 줄지어 있고 수양버들 휘늘어진데다 봄꽃이 아름답게 바람에 날리는 날. 누각에 앉아 보이차 한잔으로 나그네의 향수를 달래기에 제격입니다. 제법 넓은 이 고성 안을 그 오랜 역사의 향기를 맏으며 걷다 보면 우리는 마치 중국 무협 영화나 사극 속의 주인공이 되어 누각사이를 날아다니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특히 여행을 마치고 이 수로 옆의 한 객잔에 앉아 쉬임없이 휘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두보의 시 한수를 들으면서 홍주든 백주든 한잔 잔을 들어 그 향기를 맡으며 짧은 글 하나라도 끄적여보는 서정의 하루를 보내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되고 또 신선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여강을 안고 있는 운남성은 중국 남서부 지방에 위치한 주나 도같은 성의 하나로 티베트,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중국 정통 한족 이외에도 장족, 이족, 나시족,백족 등 26개의 소수민족이 그들만의 고유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곳입니다. 미국하고도 동부끝 워싱턴 디시에 살고있는 나로서는 중국은 머나먼 나라입니다. 마침 한국에서 허리치료와 요양을 하며 겨울을 나는데 역마살 낀 내 인생이 그 본성을 건드려 소수의 동행들과 행낭을 꾸려 서울에서 여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중국과 티벳을 연결한 차마고도(Ancient Tea Route/Southern Silk Road)는 실크로드보다 200여년이나 앞선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존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무역로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동양에서 제일 오래되었던 무역 상업이라고 추측이 될 뿐 중앙아시아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고원 초목지를 걸어 동서양을 연결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도 기원전 3650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노스(Minos) 문명의 산물로 미노안 루트가 만들어져 연속된 유럽의 첫고리라는 기록들이 있으므로 차마고도가 세계 최초는 아니다라고 어떤 학자들은 주창하는데 뭐 우리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요. 아무튼 이 차마고도는 중국 운남성과 쓰촨성에서 시작되어 티베트, 인도, 파키스탄 등지를 거쳐 비단길로 이어집니다. 마방이라 불리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서로 교환하기 위해 지나다녔는데 이길을 통해서 문화의 교류도 활발하였고 전성기에는 유럽까지 연결된 적도 있었습니다. 운남의 명물인 차 외에도 성도의 명물인 비단의 수출로였고 이밖에도 말, 소금, 약재, 곡식 등의 다양한 물품의 교역도 이루어졌으며 물품교역 외에도 여러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이 교류되었습니다. 해발 4,000m가 넘는 험준한 길과 눈 덮인 5,000m 이상의 설산과 아찔한 협곡을 잇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길로 유명하며 차마고도의 동쪽 끝이자 길이 시작되는 중국의 윈난성 지역은 보이차의 특산지로도 한주름 잡습니다. 차마고도의 길들은 크게 여덟개 노선으로 나뉘며 마방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은 티베트로 향하는 삼대 노선이 가장 유명한데 중국 청해성과 사천성 그리고 운남성에서 출발하는 노선이 일찍부터 시작되어 왕성한 교역활동이 이뤄졌습니다. 몽골과 요동에서도 차마무역이 있었지만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운남에서 티베트 국경까지 가는 3,800킬로미터가 넘는 차마고도가 가장 험난하면서도 또 가장 풍광이 아름답다고 알려져있어 근자에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장기간 탐사하는 이들도 많이 는듯합니다. 어떤 구간의 길은 매우 좁고 가파른 협로라 말 대신 사람이 차를 짊어지고 건너기도 해야하며 경험 많고 숙달된 마방들도 떠날 때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오갔으니 목숨을 담보로 떠나는 위험한 길이었기에 가계를 보존하기 위해 형제가 부인을 공유하는 풍습까지 생기게되었다합니다. 근자에 들어서는 차마고도를 따라 도로가 많이 건설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일부 마방들이 활동하며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넘기 힘들 정도로 높고 쥐가 겨우 다닐 만큼 좁다고 하여 조로서도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이 차마고도는 티베트 고원과 사천을 이어주는 교통요충지인 창도를 오가는 유목민이 가축을 몰고 다니던 위험하고 협소한 길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마방들의 이동통로가 되어 난장 형태의 국제장터인 차마호시를 위한 교역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남성에서 출발하는 길은 시솽반나에서 시작하여 쓰마오, 대리, 여강과 샹그릴라를 거쳐 더친을 넘어 티베트와 네팔, 인도로 국경을 넘어갑니다. 이미 한나라 이전인 기원전 시기에 형성되었고 당,송 시대를 거치면서 번성하였으며 이후 네팔, 인도, 유럽까지 연결되어 그 길을 따라 천년 전 티베트 불교가 주도인 라싸에서 운남·쓰촨 지역으로 전래되기도 했습니다. 시베리아를 중간기점으로 유럽에도 차를 공급하던 당나라는 차마고도와 실크로드를 연결해 위구르족 지역과 서남아시아를 거쳐 아라비아까지도 차를 전파했는데 차마호시를 통해 차와 말을 필두로 다양한 물물교환을 하며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체험을 갖게 됐습니다. 길은 장장 약 5천킬로미터에 이르며 높고 험준한 길이지만 설산들과 진사강, 란창강, 누강이 수천킬로미터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힙니다. 세 강이 이루는 삼강병류 협곡(Three Parallel Rivers of Yunnan Protected Areas)은 그 수려함으로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입니다. 1990년 7월부터 서용도라는 중국인이 다수의 원정대를 꾸려 100일에 걸친 도보탐방으로 차마지도의 옛길을 찾아냈습니다. 해발 5천미터급의 히말라야 설산봉 수십 개를 오르내리는 여정에서 낙석과 눈사태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급류로 악명높은 금사강과 노강을 밧줄 하나에 의지해 건너는 악전고투 속에 고대 무역노선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차마지도의 작은 지선 주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전통 민요와 차마교역에 얽힌 이야기를 채록하고 천점이 넘는 교역물과 문화교류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쾌거 끝에 옛 차마지도는 차마고도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90년부터 학계와 민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돌을 쪼개는 정과 망치 하나로 그 장대하고도 험난한 길을 개척했던 처절한 그들의 삶의 길위로 마침내 오르게 된것입니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차마고도를 걷기위해 이 머나먼 곳에 가서 마땅히 옥룡설산(Jade Dragon Snow Mountain)도 함께 즐기고 오는데 산에 쌓인 눈이 마치 옥빛 용들이 용트림하고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옥룡설산은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로 샹그릴라에서 여강까지 길게 뻗어있습니다. 산 정상이 해발 5,595m로 중국 남단의 산 중 가장 높이 솟은 옥룡설산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나시족들이 성산으로 추앙하는 곳으로 정상으로의 등반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옥룡설산의 가장 명물 중 하나는 인상리장이라는 야외 대형공연이 있는데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하기도 한 중국의 유명한 장이모감독이 연출한 공연인데 장쾌한 고산인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야외 무대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대형공연을 펼칩니다. 장감독은 정부와 힘을 합해 전통적인 중국과는 사뭇다른 이방의 이 고산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고스란히 녹인 스토리텔링의 공연을 매일 보여주는데 중국에는 여강의 이 인상리장외에도 항저우에서 펼쳐지는 '인상서호', 계림에서 진행되는 '인상유삼저', 무이산을 배경으로 하는 '인상대홍포', 남부 휴양지 하이난의 '인상 하이난' 등 인상(Impression) 시리즈가 연계되어 있습니다. 명산 옥룡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3,500m 야외무대에서 소수민족 10팀과 500여명의 출연 배우 그리고 동원되는 100여마리의 말이 펼치는 대단한 이 수퍼 자이언트 공연은 아마 관광지도 인해전술로 해결하는 특별한 점을 지닌 중국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싶습니다.